WEAR U BE SHARPENED? - GONZO
EDITOR : 김성윤
“이거 왜 좋아해?”
반가운 질문이다. 곧 내뱉을 대답의 첫 마디 뒤에는 ‘이거’를 좋아한다고 스스로 정의내린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내러티브와 에피소드, 성격, 철학이 목구멍에 장전된다.
“쿨하잖아.”
잘 참았다. 질문을 던진 이도 그저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별생각 없이 질문을 던졌으리라. 그렇게 내가 준비한 대답 중에서 발사되는 것은 첫 마디고, 나머지 장황한 설명은 탄피처럼 떨어져 나가곤 한다. 질문자에게는 꽤 불친절한 대답이지만 어쩔 수 없다. 무엇이 왜 좋은지를 설명하는 것은 까다롭다. ‘좋음’을 표상하는 수많은 미사여구 중에 구태여 ‘쿨하다’는 표현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제 기회가 왔다. 맘껏 떠들 장소를 준 @magazine_nerd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주머니에 고이 모아 놓았던 취향의 탄피들을 녹여 총알을 만들었다. 여기가 내 사격장이다.
나는 최고로 꼽는 것들에만 ‘쿨하다’고 말한다. 쿨하다고 여겨지기 위해서는 다음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6번을 만족하기가 가장 어렵다. 호들갑을 떨지 않으려면 항상 ‘이걸 하면 호들갑일까?’를 고민하고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데 사실 그것도 호들갑을 떨지 않기 위해 호들갑을 떠는 것이라서... 잠깐 좋아하는 단어가 나와서 논지가 흐려졌는데 이쯤에서 독자는 “제일 쿨한 브랜드는 어디인가?”하고 묻고 싶을 것이다. 나에겐 슈프림이다. 패션씬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슈프림만큼 제대로 쿨한 브랜드는 없다. 특히 4번에서 그렇다. 슈프림의 뚝심은 슈프림이라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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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프림을 패션 브랜드라는 틀 안에 가두기에는 무리가 있다. 슈프림의 설립자 제임스 제비아는 “한 번도 슈프림을 패션 회사로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슈프림은 최고의 브랜드 가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로고 파워로 어떤 물건이든 쿨하게 만든다. 화장품부터 공구, 자전거, 냉장고에서 캠핑카까지 슈프림의 로고가 붙은 것은 +α의 가치를 지닌다. 슈프림은 어쩌다 이런 문화적 거물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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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1989년, 제임스 제비아는 마리와 함께 뉴욕의 전설적인 스트릿웨어 스토어 UNION을 열었다 (조던 유니온 할 때 그 유니온 맞다). 스토어는 성공적이었고, 제비아를 본 스트릿 패션의 대부 션 스투시는 그에게 손을 내민다. 그렇게 션 스투시는 제비아와 함께 스투시 스토어를 오픈했고 큰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제비아는 이내 자신의 꿈을 스투시에서 펼치기 어렵다고 느끼고 1994년 스투시를 나와 슈프림을 세운다. 자금은 1500만 원이었다.
슈프림은 스케이트보드 샵으로 시작했지만, 제비아는 길거리 서브컬쳐를 몽땅 담아내길 원했다. 매장에서는 ZOO YORK, THRASHER, SPITFIRE, VANS 등의 스케이트 브랜드를 판매했고, 제비아의 디자인이 담긴 슈프림 티셔츠는 소량만 판매했다. 하지만 곧 발매와 동시에 품절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슈프림의 티셔츠를 사러 온 보더들은 볼멘소리를 했다. 그는 매장에 오는 보더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들은 위에 나열한 스케이트 브랜드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리바이스, 칼하트, 폴로부터 시작해서 구찌와 루이비통을 입었다. 이내 제비아는 보더들이 거칠고 헐렁하기만 한 옷보다는 패셔너블한 모습으로 거친 보드 위에 오르고 싶어 하며, 멋지고 퀄리티만 좋다면 비싼 가격의 의류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후디와 캡, 카고 팬츠 등 제품군을 늘려 나갔고, 디자이너를 채용하며 독자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슈프림은 보더들의 후줄근한 티셔츠와 후디를 정제된 로고 티셔츠와 가죽 재킷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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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gue
QUALITY?
제비아가 티셔츠를 만들 때 특별히 강조했던 것은 퀄리티였다. 당시의 젊은이들이 리, 챔피언, 노티카, 칼하트, 폴로, 리바이스 등 양질의 의류를 즐겨 입었기에 경쟁력을 위해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많은 스케이트 브랜드들에서 내는 옷의 퀄리티가 낮았기에 슈프림은 차별화되었다. 하지만 제비아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디자이너에게 헬무트 랭의 티셔츠를 레퍼런스로 보여주었다. 실제로 그는 헬무트 랭의 의류를 즐겨 입었고, 넥 라인과 같은 디테일한 부분에 집착했다. 그는 당시 베이프가 명품에서나 쓰던 riri사의 지퍼와 값비싼 고어텍스 소재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차용했다. 그는 삼십 달러짜리 티셔츠를 파는 길거리 브랜드부터 쇼에 서는 럭셔리 브랜드까지 배울 점이 있으면 가리지 않고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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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pebeast
DESIGN?
슈프림의 디자인 철학은 이해하기 어렵다. 당장 인스타그램에 @supremecopies만 치고 들어가도 어떤 지점에서 혼란이 오는지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제임스 제비아가 말이 많거나 공적인 자리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아닐뿐더러,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과거 인터뷰에는 그가 자주 오마주했던 fubu나 gap 등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문장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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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supreme / 우:g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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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supreme / 우:fu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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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supreme / 우:starter
(모든 비교사진 - @supremecopies)
왜 그토록 똑같이 따라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케이트 모스의 캘빈 클라인 캠페인 사진을 티셔츠에 그대로 넣고 그녀의 언더웨어 위에 Supreme 박스 로고를 그 위에 박는다든지 하는 사건들로 여러 번 소송에 걸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을 슈프림의 것으로 만든다. 다른 브랜드 같으면 덮어놓고 욕을 했을 테지만, 슈프림에게 유난히 관대하게 ‘이유가 있겠지’하고 생각하는 이유도 고민해볼 지점이다. 빈티지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뻔한 말로 넘어가고 싶지는 않다(이에 대한 내용은 이번 학기 잡지 기사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다만 빈티지에 대한 그의 리스펙트가 남다르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빈티지를 참고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 슈프림을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의 일상 사진에서 자주 포착되는 리바이스 전기 1세대 전기를 모델로 한 트러커부터(후에 알았지만 헬무트 랭의 제품이라고 한다), 60~70년대 디자인을 차용한 울 가디건, 주머니가 없는 디테일을 살린 리바이스 콜라보 제품 등은 그의 취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노스페이스와 협업을 할 때도 현재에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노스페이스의 과거 모델을 복각한 뒤 슈프림의 로고만 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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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reme
GENRE?
슈프림은 장르가 없다. 스케이트보드 브랜드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패션 브랜드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들은 무엇이든 만든다. 룩북의 스타일을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한 브랜드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로커빌리 스타일의 셔츠, 정제된 패턴의 체크 셋업 속 레이스 달린 셔츠와 웨스턴 벨트, 상당한 고증의 M-65 필드 자켓, 장교 트렌치 코트, 셀비지 데님과 카펜터 팬츠, 카모 패턴의 실크 셔츠까지 종잡을 수 없다. 굳이 따지자면 아메리칸 캐주얼에 가깝다. 이를 비판했던 누군가에게 제비아는 대답했다. “우리는 그저 언제나 캐주얼하고 멋진 옷을 만든다.” 이 신념으로 슈프림은 벽돌, 립스틱, 구명보트, 캠핑카에 로고를 박으면서도 다른 디자이너들을 제치고 CFDA 어워드 남성복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들은 패션을 넘어 문화 전체를 움직인다.
MARKETING?
상기한 ‘쿨함’의 조건 4번에 슈프림만큼 들어맞는 브랜드는 없다. 그들은 그들의 옷을 다른 매장에 맡기지 않았다. 그들의 옷은 오직 그들만 팔 수 있었다(작년부터 도버스트릿마켓에 슈프림이 입점했기에 과거형으로…). 그들은 상업적인 광고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쿨하다. 그들의 광고는 광고를 위해 마련된 창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이 후원하는 스케이트보드 팀에게 티셔츠를 입히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티셔츠를 입힌다. 그들의 크루에서 직업은 중요하지 않다. 스타 스케이터 션 파블로, 셀럽 케이트 모스와 레이디 가가, 사진작가 샌디 킴 등 최고로 멋진 이들이 그들의 크루이다. 그들은 그들 자체로 광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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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사람들은 슈프림의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몸에 걸치길 자처하고, 세계 최고의 브랜드들은 슈프림의 로고가 자신들의 제품에 찍히기를 바란다. 슈프림은 ‘이미 누군가가 한 것은 하지 않는다’는 철칙으로 산업과 문화를 섞어 새로움을 가져온다. 그것은 스트리트 문화가 진정으로 이끌어갈 일이다. 사업 성공을 위한 첫 단계는 친절한 응대라는 말이 있지만 슈프림은 반대다. 그들 샵의 직원은 스케이터들이다. 그들은 자기 멋대로고 불친절하다. 모든 스케이터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슈프림 매장의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친구들의 말을 빌리면, 고객이 계산해 달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보드를 타고 싶다며 30분 동안 가게에서 기다리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뱃지를 6개(!) 사려고 하는 고객에게 하나만 사라고 핀잔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은 모여든다. 슈프림이기에 가능하다. 당연히 품절에 웃돈과 함께 리셀될 것을 알면서도 400개만 판매하는 콜라보 발매 방식, 한 번에 풀지 않고 한 주에 몇 가지 제품만 내는 드롭 위크 방식 모두 슈프림의 것이다. 소비자들은 항상 슈프림을 지켜보며 애간장을 태운다. 그렇게 브랜드 가치는 올라간다. 수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은 슈프림의 마케팅을 배우고 복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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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xurylaunches
마치며
슈프림이 탄탄대로만 걷던 것은 아니었다. 대기업인 VF 코퍼레이션에 인수되었을 때 팬들은 슈프림의 아이덴티티가 사라질까 우려했다. 하지만 제임스 제비아를 비롯한 운영진은 함께 VF에 들어갔고, 슈프림의 DNA를 VF의 패션 사업에 이식했다. 슈프림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도버 스트릿 마켓과 꼼데가르송의 CEO인 아드리안 조프는 “나는 그렇게 강하고 외골수적인 비전을 가진 사람,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를 늘 유지해온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제임스 제비아를 평가했다. 제임스 제비아는 GQ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지금처럼 잘 나가지 않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똑같이 하던 대로 할 것이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다.” 유행을 이끌고 시대를 풍미하던 브랜드는 유행이 바뀐다고 해서 무시 받지 않는다. 슈프림은 항상 One-of-a-KIND 빈티지로 남을 것이고 그 업적은 아직 진행형이다.
+GQ와 제임스 제비아의 인터뷰를 많이 참고했고 슈프림을 좋아하던 때부터 종종 구글에서 구경한 정보들을 담았습니다. 어디서 본 건지 기억해낼 순 없겠지만 중학교 때 영어로 된 인터넷 글 보면서 친구들한테 영어 잘하는 척했던 게 생각나네요.
반가운 질문이다. 곧 내뱉을 대답의 첫 마디 뒤에는 ‘이거’를 좋아한다고 스스로 정의내린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내러티브와 에피소드, 성격, 철학이 목구멍에 장전된다.
“쿨하잖아.”
잘 참았다. 질문을 던진 이도 그저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별생각 없이 질문을 던졌으리라. 그렇게 내가 준비한 대답 중에서 발사되는 것은 첫 마디고, 나머지 장황한 설명은 탄피처럼 떨어져 나가곤 한다. 질문자에게는 꽤 불친절한 대답이지만 어쩔 수 없다. 무엇이 왜 좋은지를 설명하는 것은 까다롭다. ‘좋음’을 표상하는 수많은 미사여구 중에 구태여 ‘쿨하다’는 표현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제 기회가 왔다. 맘껏 떠들 장소를 준 @magazine_nerd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주머니에 고이 모아 놓았던 취향의 탄피들을 녹여 총알을 만들었다. 여기가 내 사격장이다.
나는 최고로 꼽는 것들에만 ‘쿨하다’고 말한다. 쿨하다고 여겨지기 위해서는 다음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 그 분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는가? 혹은 역사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고 있는가?
- 같은 씬의 다른 행위체들에 영향을 미치는가?
- 시대를 막론하고 보고 배울 만한가?
- 뚝심 있게 멋있는 것을 하는가?
- 유행에 지나치게 편승하지 않는가?
- 호들갑을 떨지 않는가?
6번을 만족하기가 가장 어렵다. 호들갑을 떨지 않으려면 항상 ‘이걸 하면 호들갑일까?’를 고민하고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데 사실 그것도 호들갑을 떨지 않기 위해 호들갑을 떠는 것이라서... 잠깐 좋아하는 단어가 나와서 논지가 흐려졌는데 이쯤에서 독자는 “제일 쿨한 브랜드는 어디인가?”하고 묻고 싶을 것이다. 나에겐 슈프림이다. 패션씬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슈프림만큼 제대로 쿨한 브랜드는 없다. 특히 4번에서 그렇다. 슈프림의 뚝심은 슈프림이라서 가능하다.

슈프림을 패션 브랜드라는 틀 안에 가두기에는 무리가 있다. 슈프림의 설립자 제임스 제비아는 “한 번도 슈프림을 패션 회사로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슈프림은 최고의 브랜드 가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로고 파워로 어떤 물건이든 쿨하게 만든다. 화장품부터 공구, 자전거, 냉장고에서 캠핑카까지 슈프림의 로고가 붙은 것은 +α의 가치를 지닌다. 슈프림은 어쩌다 이런 문화적 거물이 됐을까.


HISTORY?
1989년, 제임스 제비아는 마리와 함께 뉴욕의 전설적인 스트릿웨어 스토어 UNION을 열었다 (조던 유니온 할 때 그 유니온 맞다). 스토어는 성공적이었고, 제비아를 본 스트릿 패션의 대부 션 스투시는 그에게 손을 내민다. 그렇게 션 스투시는 제비아와 함께 스투시 스토어를 오픈했고 큰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제비아는 이내 자신의 꿈을 스투시에서 펼치기 어렵다고 느끼고 1994년 스투시를 나와 슈프림을 세운다. 자금은 1500만 원이었다.
슈프림은 스케이트보드 샵으로 시작했지만, 제비아는 길거리 서브컬쳐를 몽땅 담아내길 원했다. 매장에서는 ZOO YORK, THRASHER, SPITFIRE, VANS 등의 스케이트 브랜드를 판매했고, 제비아의 디자인이 담긴 슈프림 티셔츠는 소량만 판매했다. 하지만 곧 발매와 동시에 품절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슈프림의 티셔츠를 사러 온 보더들은 볼멘소리를 했다. 그는 매장에 오는 보더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들은 위에 나열한 스케이트 브랜드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리바이스, 칼하트, 폴로부터 시작해서 구찌와 루이비통을 입었다. 이내 제비아는 보더들이 거칠고 헐렁하기만 한 옷보다는 패셔너블한 모습으로 거친 보드 위에 오르고 싶어 하며, 멋지고 퀄리티만 좋다면 비싼 가격의 의류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후디와 캡, 카고 팬츠 등 제품군을 늘려 나갔고, 디자이너를 채용하며 독자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슈프림은 보더들의 후줄근한 티셔츠와 후디를 정제된 로고 티셔츠와 가죽 재킷으로 바꿨다.

@vogue
QUALITY?
제비아가 티셔츠를 만들 때 특별히 강조했던 것은 퀄리티였다. 당시의 젊은이들이 리, 챔피언, 노티카, 칼하트, 폴로, 리바이스 등 양질의 의류를 즐겨 입었기에 경쟁력을 위해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많은 스케이트 브랜드들에서 내는 옷의 퀄리티가 낮았기에 슈프림은 차별화되었다. 하지만 제비아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디자이너에게 헬무트 랭의 티셔츠를 레퍼런스로 보여주었다. 실제로 그는 헬무트 랭의 의류를 즐겨 입었고, 넥 라인과 같은 디테일한 부분에 집착했다. 그는 당시 베이프가 명품에서나 쓰던 riri사의 지퍼와 값비싼 고어텍스 소재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차용했다. 그는 삼십 달러짜리 티셔츠를 파는 길거리 브랜드부터 쇼에 서는 럭셔리 브랜드까지 배울 점이 있으면 가리지 않고 가져왔다.

@hypebeast
DESIGN?
슈프림의 디자인 철학은 이해하기 어렵다. 당장 인스타그램에 @supremecopies만 치고 들어가도 어떤 지점에서 혼란이 오는지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제임스 제비아가 말이 많거나 공적인 자리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아닐뿐더러,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과거 인터뷰에는 그가 자주 오마주했던 fubu나 gap 등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문장들 뿐이다.


좌:supreme / 우:gap


좌:supreme / 우:fubu


좌:supreme / 우:starter
(모든 비교사진 - @supremecopies)
왜 그토록 똑같이 따라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케이트 모스의 캘빈 클라인 캠페인 사진을 티셔츠에 그대로 넣고 그녀의 언더웨어 위에 Supreme 박스 로고를 그 위에 박는다든지 하는 사건들로 여러 번 소송에 걸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을 슈프림의 것으로 만든다. 다른 브랜드 같으면 덮어놓고 욕을 했을 테지만, 슈프림에게 유난히 관대하게 ‘이유가 있겠지’하고 생각하는 이유도 고민해볼 지점이다. 빈티지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뻔한 말로 넘어가고 싶지는 않다(이에 대한 내용은 이번 학기 잡지 기사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다만 빈티지에 대한 그의 리스펙트가 남다르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빈티지를 참고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 슈프림을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의 일상 사진에서 자주 포착되는 리바이스 전기 1세대 전기를 모델로 한 트러커부터(후에 알았지만 헬무트 랭의 제품이라고 한다), 60~70년대 디자인을 차용한 울 가디건, 주머니가 없는 디테일을 살린 리바이스 콜라보 제품 등은 그의 취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노스페이스와 협업을 할 때도 현재에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노스페이스의 과거 모델을 복각한 뒤 슈프림의 로고만 더할 뿐이다.


@supreme
GENRE?
슈프림은 장르가 없다. 스케이트보드 브랜드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패션 브랜드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들은 무엇이든 만든다. 룩북의 스타일을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한 브랜드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로커빌리 스타일의 셔츠, 정제된 패턴의 체크 셋업 속 레이스 달린 셔츠와 웨스턴 벨트, 상당한 고증의 M-65 필드 자켓, 장교 트렌치 코트, 셀비지 데님과 카펜터 팬츠, 카모 패턴의 실크 셔츠까지 종잡을 수 없다. 굳이 따지자면 아메리칸 캐주얼에 가깝다. 이를 비판했던 누군가에게 제비아는 대답했다. “우리는 그저 언제나 캐주얼하고 멋진 옷을 만든다.” 이 신념으로 슈프림은 벽돌, 립스틱, 구명보트, 캠핑카에 로고를 박으면서도 다른 디자이너들을 제치고 CFDA 어워드 남성복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들은 패션을 넘어 문화 전체를 움직인다.
MARKETING?
상기한 ‘쿨함’의 조건 4번에 슈프림만큼 들어맞는 브랜드는 없다. 그들은 그들의 옷을 다른 매장에 맡기지 않았다. 그들의 옷은 오직 그들만 팔 수 있었다(작년부터 도버스트릿마켓에 슈프림이 입점했기에 과거형으로…). 그들은 상업적인 광고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쿨하다. 그들의 광고는 광고를 위해 마련된 창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이 후원하는 스케이트보드 팀에게 티셔츠를 입히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티셔츠를 입힌다. 그들의 크루에서 직업은 중요하지 않다. 스타 스케이터 션 파블로, 셀럽 케이트 모스와 레이디 가가, 사진작가 샌디 킴 등 최고로 멋진 이들이 그들의 크루이다. 그들은 그들 자체로 광고가 된다.

@i-D
사람들은 슈프림의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몸에 걸치길 자처하고, 세계 최고의 브랜드들은 슈프림의 로고가 자신들의 제품에 찍히기를 바란다. 슈프림은 ‘이미 누군가가 한 것은 하지 않는다’는 철칙으로 산업과 문화를 섞어 새로움을 가져온다. 그것은 스트리트 문화가 진정으로 이끌어갈 일이다. 사업 성공을 위한 첫 단계는 친절한 응대라는 말이 있지만 슈프림은 반대다. 그들 샵의 직원은 스케이터들이다. 그들은 자기 멋대로고 불친절하다. 모든 스케이터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슈프림 매장의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친구들의 말을 빌리면, 고객이 계산해 달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보드를 타고 싶다며 30분 동안 가게에서 기다리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뱃지를 6개(!) 사려고 하는 고객에게 하나만 사라고 핀잔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은 모여든다. 슈프림이기에 가능하다. 당연히 품절에 웃돈과 함께 리셀될 것을 알면서도 400개만 판매하는 콜라보 발매 방식, 한 번에 풀지 않고 한 주에 몇 가지 제품만 내는 드롭 위크 방식 모두 슈프림의 것이다. 소비자들은 항상 슈프림을 지켜보며 애간장을 태운다. 그렇게 브랜드 가치는 올라간다. 수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은 슈프림의 마케팅을 배우고 복제한다.

@luxurylaunches
마치며
슈프림이 탄탄대로만 걷던 것은 아니었다. 대기업인 VF 코퍼레이션에 인수되었을 때 팬들은 슈프림의 아이덴티티가 사라질까 우려했다. 하지만 제임스 제비아를 비롯한 운영진은 함께 VF에 들어갔고, 슈프림의 DNA를 VF의 패션 사업에 이식했다. 슈프림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도버 스트릿 마켓과 꼼데가르송의 CEO인 아드리안 조프는 “나는 그렇게 강하고 외골수적인 비전을 가진 사람,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를 늘 유지해온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제임스 제비아를 평가했다. 제임스 제비아는 GQ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지금처럼 잘 나가지 않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똑같이 하던 대로 할 것이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다.” 유행을 이끌고 시대를 풍미하던 브랜드는 유행이 바뀐다고 해서 무시 받지 않는다. 슈프림은 항상 One-of-a-KIND 빈티지로 남을 것이고 그 업적은 아직 진행형이다.
+GQ와 제임스 제비아의 인터뷰를 많이 참고했고 슈프림을 좋아하던 때부터 종종 구글에서 구경한 정보들을 담았습니다. 어디서 본 건지 기억해낼 순 없겠지만 중학교 때 영어로 된 인터넷 글 보면서 친구들한테 영어 잘하는 척했던 게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