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Midnight-blue of Male)


EDITOR : 도기유



밤 10시 반, 거시경제학 자습을 마치고 독서실에서 나와 밤하늘을 보며 담배를 태웠다. 바람이 매캐한 연기가 되고 하늘이 별이 될 즈음, 나는 내 안에 응어리진 무언가를 느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에 암약했던 불안과 우울을 다시금 자각하게 될 때가 온 것이다. 그것들은 단 한 번도 날 떠난 적이 없었다. 류근이 그랬던가. 진정한 불안과 우울, 그리고 절망은 깨달음의 세계라고. 한 번 깨달은 것은 극복될 수 없고 한 개인의 불안과 우울이 진정하다면 그것은 영원히 극복될 수 없다.





아무리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가벼운 기쁨과 둔탁한 기분들로 덮어봐도, 봄만 되면 그들은 스멀스멀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내가 준비하고 있는 시험의 필요 수험기간이 상반기라는 건 상당한 핸디캡이다. 난 항상 1학기보단 2학기, 중간고사보단 기말고사 때 시험을 더 잘 봤다. 봄과 시간적 거리가 멀수록 능률이 올라가는 편이다. 봄 보지 쇠 저 녹이고 봄 좆이 쇠판 뚫는다던데... 난 반대인 것 같다. 봄에 춘정 오르고, 생각도 많아지고... 봄이 싫다 정말. 하지만, 그럼에도 봄은 태동의 계절이고, 봄은 진리의 산파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고통은 말한다! 사라져라! 하지만 모든 쾌락은 영원을 원한다!” 기쁨은 자기동일적이며, 슬픔은 자기부정적이다. 반성이 없는 기쁨은 진리를 낳지 못한다. 반성을 근거로 한 슬픔, 불안, 그리고 우울은 존재의 문(門)을 개방한다. 슬픔이 자신을 향해 “사라져라!”라 외칠 수 있는 것도 존재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한 ‘자기 간 거리두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감정을 동반한 이성에서 나온다.


스스로 감정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소위 말하는 ‘감정적인’ 부류의 사람이나 행동, 말 등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이성의 자유로운 활동과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 따위로 생각했었다. 물론, 종결어미가 과거형으로 끝났으니,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생각이 깊은 사람 치고 속에 품고 있는 감정이 풍부하지 않은 사람은 잘 없을 것이다. 물론 내가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는 말이 맞긴 하다. 내가 혐오하던 것은 감정이 아닌 순간의 기분에 가까웠다. 기분과 감정은 다르다. 기분은 즉흥적이고, 일시적이며, 대개 논리정연하게 정리될 수 없다. 하지만 감정은 다르다. 감정은 불타는 이성이다. 이성보단 뜨겁고, 분명 그 유지 기간도 짧지만, 감정은 추적할 수 있는 생각을 동반한다. 이성적 사고과정의 끝은 특정한 감정의 유발로 이어질 때가 많고 그것이 동시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난 감정적이다. 감정 과잉이다. 표현은 딱히 안 하지만.





미(尾)가 너무 길었는데, 거두절미하자면 난 이소라가 좋다. 나를 눈물짓게 만들 수 있는 가사를 쓰는 몇 안 되는 가수이다. 이소라에게는 세계관이 있다. 이소라식 감성적 발라드의 전형인 1집과 얼터너티브 록 앨범이었던 8집의 내러티브는 사실상 같은 내용을 이루고 있다. 적잖은 자전적인 가사에도 불구하고, 이소라의 세계관은 청자에게 감정적 동일시를 불러일으키는 데에 충분하다. ‘한’의 세계관. 사랑하는 사람이 비록 떠나갔을지라도, 그 빈자리는 영원토록 생각하겠다는 그 간절함과 눈물. 숭고한 존재로서 인간이 자신의 빛을 되찾는 순간이다. 진리는 슬픔 속에서, 빛은 눈물 속에서만 건져 올릴 수 있으니까.


그러나 어디 가서 이소라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썩 쉬운 일은 아니다. 다 큰 성인 남자가 이소라를 좋아한다고 하면 종종 듣는 소리: “너 취향 되게 페미닌(본 글에선 ‘관습적 여성성’으로 이 단어를 규정한다)하다”, “너 감성충이니?”.


남자가 이소라를 좋아해도 되는가. 뭔 얼토당토않은 질문인가 싶겠지만, 감성이 벌레가 되고 무심함이 ‘쿨’한 것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는 일부 세계에선, 이 질문을 검토할 실익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한국의 근 100년의 근현대사는 고통의 역사였다.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배, 내전, 가난, 독재, 이 모든 것을 한국은 ‘단 1세기’ 안에 겪은 나라다. 다행히도 ‘단 1세기’ 안에 이 모든 것을 표면상으론 거의 다 극복해냈지만, 그 이면엔 은폐되고 억제된 고통의 정서가 있었다. 자신이 살아온 시절이 너무 끔찍하고 죽다 살아났으며 그런데도 그 고통을 밖으로 꺼내지 않고 참아왔기에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게 대하게 되는 것이다. 고통을 오래 견딘 사람이 되려 고통에 민감하지 못하다. 한국엔 이런 극단적인 사회적 트라우마가 만연하다. 극기의 신화를 통해 성립된 나라에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나약한 것으로 여겨지고, 이는 곧 관습적 여성성과 결부된다. 이와 더불어 한국 사회의 집단적 트라우마의 근원인 징병제를 통해 성인 남성의 대다수는 극기와 감정의 억압을 경험하게 되고, 이는 감정 또는 감성적인 것이 페미닌하다는 사회적 인식으로 이어진다.


감성적인 것이 정말로 나약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big balls’가 필요한 것은 외려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답하고 싶다. 감정의 구렁텅이란 너무나도 깊고 어두운 것이라 어지간한 용기로는 기꺼이 빠져들 수 없다.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직시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감정적이든 감성적이든 괜찮다. 센티멘털해져도, 당신의 그곳은 떨어지지 않는다. Ice Spice를 들어도 그곳이 건재하다면 이소라를 듣는다 해서 떨어지지 않는다. 이소라를 듣는 당신은 용감하고 강인하다. 용감한 당신은 이소라의 사랑의 고전과도 같은 말들을 깨닫게 될 것이고, 이소라가 그 단순해 보이는 고전을 가사로 써 내리기 위해 흘린 눈물의 숭고함을 알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깨달음은 기쁨이 아닌 슬픔에서 나온다.


깨달음이 슬픔에 있다고 계속 강변해왔으니, 작년에 우울과 권태를 겪으며 개인적으로 깨달은 바에 대해 조금 얘기해보며 글을 맺고자 한다. 나의 천성이 삐딱하여 한때 사랑과 같은 감정과 충동에 조소를 보내기도 했었지만 삶은 어쩔 수 없이 이해를 갈구하는 과정이란 것을, 결국에 삶을 완성해주는 건 사랑이란 것을, 작년에 어찌어찌 깨닫게 되었다. 자세한 건 묻지 마시라. 헤어진 지 꽤 됐다(언팔했는데 설마 이걸 보진 않겠지) 각설하고, 감정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의 전환도 작년의 우울 속에서 이루어졌다. 늦바람에 터진 감정 덕분에 그땐 부정적인 후유증이 컸지만, 이제는 내가 어떤 소중한 감정들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됐으니 다음에는 잘 조절해가며 대처해갈 계획이다. 앞으론 나의 마음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건강하고 완전한 나의 모습을 찾아가고 싶다.


참, 어른처럼 딱딱하게 살고 싶어서 별 짓거리를 다 해놓고선, 막상 어른이 되라고 요구받으니 소년으로 남고 싶다니.
어리석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