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 des Garçons에 관하여(1)
Comme des Garçons 1969~1989


EDITOR: 장태원

최근 패션마케팅 수업에서 패션과 결부지어 자기소개를 해야하는 과제가 있었다. 솔직히 마케팅을 이젠 썩 좋아하지 않는 입장으로서 과목이 달갑지 않아 소개를 할 때도 말을 아꼈다. 소개 항목 중 가장 좋아하는 패션 레이블을 적는 것이 있었다. 그 부분에 꼼 데 가르송(Comme des Garçons)을 작성하였고 짧게 서술했다. 하지만 서구권 패션 레이블 중 꽤나 유구한 역사를 지닌 꼼 데 가르송은 몇 자 정도로 환원될 브랜드가 아니기에 이에 관해 글을 적어보고자 한다. 꼼 데 가르송에는 굉장히 많은 서브 레이블들이 존재하고 그 중 가장 메인이 되며 오랜 역사를 지닌 꼼 데 가르송(Comme des Garçons)에 관해 적어보며 이 시리즈를 시작하고자 한다.

 사실 디깅클럽용인을 테마로 하는 글에 염증을 느낀 것도 있다. 내 개괄적인 소개로 이어갈 수 있는 브랜드들은 차고 넘치기에 간만에 다른 결의 글을 준비하게 됐다. 꼼 데 가르송의 컬렉션과 피스들을 둘러보며 하우스의 역사에 관한 공부를 스스로 하는 행동이기도 하며 그가 추구했던 철학에 관해서도 고민해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꼼 데 가르송의 1969년 첫 컬렉션부터 1989년 컬렉션까지 도합 20년을 다뤄보고자 한다. 이 이후에는 1990년부터 2009년까지 2편으로 2010년부터 현재까지 도합 3편으로 꼼 데 가르송의 메인 라인에 관해 다룰 예정이다. 아마 꼼 데 가르송을 다 다루기만 해도 스무 편 이상의 글이 나올 것 같아 심히 걱정이다. 이 글도 공부 겸 편하게 적는 글이라 디깅클럽용인과 마찬가지로 업로드 주기는 정해져있지 않다.



Rei Kawakubo


자, 서두는 여기까지면 됐다. 꼼 데 가르송이라는 막대한 대양을 탐험하기 전 나침반과 지도를 준비하듯 우리는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라는 인물에 관해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레이 가와쿠보는 1942년 10월 11일 도쿄에서 2남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게이오대학교에서 관리자로 근무했으며 그의 아버지의 영향인지 레이 또한 게이오대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그녀는 일반적으로 성공한 천재 디자이너의 길을 걷지 않았다. 입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처럼 어릴 적부터 옷을 디자인하지도 않았으며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처럼 고교를 자퇴한 뒤 새빌 로우(Savile Row)와 같은 패션의 중심지에서 일을 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순수미술과 문학을 전공하며 그의 세계관을 구축했다. 학교를 졸업한 1964년 그는 일본의 직물 회사인 아사히 카세이(Asahi Kasei)의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하였고 1967년에 프리랜서 스타일리스트로 전향했다. 안타깝게도 이 당시의 레이의 스타일링 작업물의 사진이 남아있지는 않아 첨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2년 뒤 그는 자신의 레이블 꼼 데 가르송을 런칭하게 된다. 이 때 설립한 라인 "꼼 데 가르송"이 그가 창업과 동시에 만든 최초의 컬렉션이자 가장 긴 역사를 지닌 컬렉션이다. 디지털 아카이브의 부재 때문일까 이 당시의 옷들을 찾아보기는 정말 힘들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피스들이 1983년 발매된 티셔츠와 드레스인 점을 감안한다면 초창기의 컬렉션과 피스들은 사실상 찾아볼 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1969년에 첫 컬렉션을 런칭한 이후 1973년에 꼼 데 가르송은 정식적인 회사(Comme des Garçons Co. Ltd)가 되었으며 1975년에 그는 도쿄에 첫 부티크를 런칭했다. 1978년에는 남성복 라인을 처음으로 전개하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현재 꼼 데 가르송의 남성복을 총괄하고 있는 준야 와타나베(Junya Watanabe)는 1984년 분카복장학원을 졸업한 뒤 1987년 꼼 데 가르송 트리콧(Comme des Garçons Tricot)의 니트 총괄 디자이너로 합류했고 이후 꼼 데 가르송의 남성복 라인으로 부서를 이동했다. 따라서 1978년부터 1991년까지의 꼼 데 가르송의 남성복 컬렉션은 레이 가와쿠보의 작품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이후 다룰 예정이며 이번 글에서는 꼼 데 가르송 라인을 집중적으로 조망할 예정이다.




위의 드레스는 현재 온라인에서 찾아볼 수 있는 꼼 데 가르송의 가장 오래된 피스이다. 드레스에 끝도 없이 잡혀있는 개더는 그가 지금껏 보여줬던 지독한 실루엣에 관한 집착의 전신이다. 레이 가와쿠보가 보여준 실루엣들은 여성 해방과도 연관되어 있다. 1970년대의 시대상에 관해서는 말할 것도 없으며 그가 자라왔던 전쟁 중이었던 사회와 전후의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격하되어 있었다. 이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 때문에 세계 각지 패션계에서는 여성 해방을 위한 움직임이 벌어졌다.

대표적으로는 코코 샤넬(Coco Chanel)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샤넬은 여성이 가지는 미의 권리 회복에 집중했으며 여성 복식에 큰 영향을 가져왔다. 여성은 더욱 자신감있게 옷을 입을 수 있었으며 샤넬은 그의 몇 원칙과 철학 아래에서 디자인을 선보였다. 하지만 레이 가와쿠보는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혁명을 일궈냈다. 여성에 관한 평등주의적 관점으로 패션에 접근한 것은 샤넬과 유사하나 그걸 운용했던 방식에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그는 실로 육체적인 편안함을 자아냈다. 전쟁 중의 움직임을 용이하게 하는 거역할 수 없는 사회적 실루엣이 아닌 해방의 선언으로 한껏 부풀려진 실루엣을 선보였다. 위의 드레스 또한 그러하다. 몸을 옥죄는 형태의 옷이 아닌 여유있는 실루엣으로 활동성을 재고함과 동시에 수많은 개더와 종횡하는 선으로 미적인 해방 또한 이뤄냈다.

어깨와 몸 부분에 부착되어 있는 푸른 빛의 패치워크는 현 시점에도 꼼 데 가르송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디테일이다. 그가 집중해왔던 구조적인 실루엣과 동시에 기하학적으로 미감을 더하는 패치워크는 이후 발전하게 되어 기본 복식의 변형에 더해져 수많은 트리밍으로 분화하게 된다. 이러한 초기의 디테일을 보고는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i)를 떠올리기도 했다. 레이의 커리어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면 파리에서 컬렉션을 런칭할 때 함께 했던 블라디슬라브 바친스키(Vladislav Bachinskyy)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와 연관이 있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에 관해 언급된 논문은 2002년에 작성된 것이고 현재 인터넷에서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미결의 찝찝함만을 남긴다.




국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꼼 데 가르송의 피스이다. 이태원을 갈 때면 거의 매 번 들르는 애심에서 바잉한 극초창기 꼼 데 가르송의 코트이다. 이 샵의 바잉 능력에 늘상 감탄을 하곤 하지만 이번에 글을 쓰며 자료 조사를 하다가 또 한 번 감탄하게 되었다. 이 피스는 굉장히 투박한 울로 만들어졌으며 래글런 코트의 패턴을 보이고 있지만 어깨 윗부분에 갑옷에서 보일법한 디테일을 더함으로써 꼼 데 가르송 특유의 뒤틀림을 만들어냈다. 래글런 코트 혹은 발마칸 코트 특유의 직선적인 실루엣을 갖고 있으며 그 유래에 걸맞는 군복 기반의 디테일을 관찰할 수 있다.(밀리터리 베이스나 빈티지에 관해서는 필자의 지식이 부족한 편이기 때문에 이에 관해 잘못된 부분이 기재되어 있거나 추가해야할 중요한 내용이 있다면 얘기해주길 바란다.) 특히 뒷 부분 벤트의 형태와 벤트의 조정 범위를 한정 짓기 위해 덧댄 디테일이 실용적으로 느껴진다. 실용성과 동시에 기본 복식에 위트를 더하는 꼼 데 가르송 특유의 미감을 곱씹어보며 느낄 수 있는 피스이다.





1981년, 레이 가와쿠보는 파리에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됐다. 상기한 블라디슬라브 바친스키와 함께 그는 매 시즌마다 파리에서 자신의 컬렉션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위의 도록은 그의 1981년부터 1986년까지의 컬렉션을 담은 것인데 가격을 보면 꼼 데 가르송의 옷 한 벌과 맞먹는 가격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공식적인 그의 컬렉션을 모두 확인하는 건 꽤나 고된 일이다. 그래서 결국 사냥꾼의 길을 다시 걸을 수밖에 없다. 핀터레스트와 매물들을 뒤지며 당시의 옷들의 사진을 찾기에 정확한 정보가 부재한다. 상세한 컬렉션의 정보를 알 수 없고 1980년대라는 명목으로 수 년을 퉁치는 게 필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레이의 옷은 파리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실재로도 당시 평론가들은 레이의 옷을 "Hiroshima Chic"라는 말로 형용했다. 이 표현이 함의하는 바가 정말 무자비한 서구권의 인식을 보여준다고 생각하긴 하나 그 문제를 차치해두고 레이 가와쿠보의 컬렉션은 기성 서구권 패션의 질서를 휘저어 놓았다. 1980년대라고 하면 꾸뛰리에 전성 시대로 극도로 세심한 공정을 거쳐 생산된 원단과 꾸뛰리에들의 피, 땀, 눈물을 갈아 만든 정교한 패턴 그리고 압도적인 퀄리티의 봉제와 마감, 디테일이 평가의 중심이 되던 시기였다. 색상의 차원에서도 다양한 색상의 구현을 높게 쳐주던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 당시를 떠올리고자 한다면 피에르 가르뎅(Pierre Cardin)의 1980년대 컬렉션을 확인해보도록 하자.

하지만 레이 가와쿠보의 꼼 데 가르송은 전혀 다른 결의 디자인을 선보였다. 강산이 몇 번이 바뀔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현재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해체주의의 선봉에 서있던 그는 완벽에 관한 당대의 집착을 해체시켰다. 구멍이 크게 뚫려 있는 니트와 무수한 주름으로 층진 스커트, 그리고 그 둘의 연결고리가 되는 검정색은 꼼 데 가르송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는 안티패션이라는 하나의 개념을 서양에 들고 온 여인이자 추를 통해 숭고미를 구현하며 신화를 써내려갔다. 물론 레이 개인이 그의 초창기 작업에 관한 회의를 드러낸 것과는 별개의 차원이다. 네크 라인과 암홀의 위치 또한 기존의 옷과는 다른 뒤틀린 형태를 지니고 있었으며 스커트 또한 아름답다기 보다는 넝마주이에 가까운 형태를 지니고 있다. 기라성들의 각축전이 벌여지던 파리에 럭셔리라고 부를 수조차 없던 꼼 데 가르송의 옷은 평론가들의 혹평을 뚫고 점차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여느 문화계의 영웅들이 그러하듯 그 또한 몇 명의 평론가를 제물삼아 정상으로 도약했다.



3번(우측 상단) 사진에서 보이는 과장된 실루엣과 디테일의 코트는 그가 사용했던 모노톤 계열의 색상으로 다룰 수 있는 형태적 아름다움을 여실히 드러낸다. 케이프와 같은 실루엣을 보이면서도 이후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나 라프 시몬스(Raf Simons) 등의 인물들이 선보인 과장된 칼라의 피코트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팔 부분을 관찰한다면 해당 피스는 스웨터임을 알 수 있고 이 점이 굉장히 흥미롭다. 소재의 전형과는 다른 형태의 옷을 만들었다는 점이 그의 영감이 되는 전통에의 도전과도 맞닿아 있다.

4번(우측 중앙) 사진 첫 착장의 자켓과 스커트 또한 추하다고 불릴 법한 요소들을 적극 차용한다. 치마 위에 추가로 더해져있는 트리밍과 자켓의 독특한 실루엣에서 그의 실험의 흔적이 엿보인다. 꼼 데 가르송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거의 매 컬렉션마다 기존의 원리원칙을 파괴하고 새로운 옷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레이는 하우스의 무드를 유지할 수 있는 여러 요소를 지속적으로 삽입해왔기 때문에 현재의 꼼 데 가르송에서 우리가 특정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다. 다리에 감겨 있는 리본과 장갑에 붙어 있는 장식들은 그들의 이름에 박혀 있는 "Garçons(소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소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후 꼼 데 가르송의 컬렉션에서도 여성미 내지 소녀스러움을 돋보이게 하는 장식들로 위트 있는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다. 칼라의 디자인 또한 여성적이다. 비대한 칼라와 크롭 기장의 자켓과 거기에 더한 괴이한 실루엣의 스커트는 히로시마 시크라고 불리우는 그의 옷을 정확히 위시한다.

마지막 사진의 두 번째(우측 하단)에 삽입되어 있는 착장도 꼼 데 가르송이 주로 선보이는 실루엣이 꽤나 오랜 시간을 거쳐 반복되어 온 것임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증거이다. 사루엘 팬츠는 그 기반이 이슬람이긴 하지만 서구권 패션에서 꽤나 자주 마주칠 수 있는 종류의 바지이다. 물론 상기한 착장에서의 바지는 사루엘 팬츠는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혹은 영감을 받았다고 추정되는 실루엣을 가지고 있다. 배기핏의 통 넓은 바지가 밑단에 다다를수록 급격하게 좁아지는 모습은 사루엘 팬츠와 동일하다. 좌측의 인물은 쇼츠에 롱 삭스를 매칭한 것이지만 동일한 색상을 사용한 덕분에 색다른 연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위와 같은 실루엣은 꼼 데 가르송을 상징하는 전위적인 실루엣 중 하나이다. 그 뿐일까. 함께 입은 코트 또한 A 라인 실루엣에 변형을 준 것이다. 크리스티앙 디오르(Christian Dior)이 이와 같은 실루엣을 보여준지 30년 이상이 지난 시점에 A 라인이 새롭게 부활한 것이다. 어깨와 칼라 부분에서 느껴지는 기모노 등의 일본 복식의 흔적과 버튼 및 하단 레이어에서는 기존 서양 복식에 변주를 줘 한층 더 고차원적인 디자인을 구현해냈다.


Comme des Garçons SS 1987

위의 컬렉션은 이전까지의 컬렉션에 비해서는 훨씬 더 정제되어 있다. 하지만 레이 특유의 급진적인 실루엣과 특정 디테일의 과장된 발현을 통해 만들어지는 우발적인 의복의 형태는 여전하다. 또한 검정색과 흰색 기반의 패션 또한 여전하다. 전후 시대를 온 몸으로 겪어온 그로서는 검정이 지니는 무게는 남들과는 궤를 달리할 것이다. 세상의 권력이자 폭력의 상징이기도 하며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음울한 분위기를 묘사하기도 할 것이다. 그에게 검정이라는 색은 철학적인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는 하나의 수단이다.

위 컬렉션에서 관찰되는 비대칭과 슬릿은 보는이로 하여금 긴장감을 자아내며 실루엣을 분석하고 싶게 만드는 묘한 인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꼼 데 가르송에서도 자주 보이는 연출의 방식이기도 하며 그 기반을 잡아 놓은 컬렉션이 이 컬렉션이다. 언제나 그의 컬렉션은 광기로 칠해져있지만 이와 같이 정제된 상황 하에서도 충분히 본인만의 미감을 보여줄 수 있음을 해당 컬렉션을 통해 그는 증명했다. 그리고 이 시기의 꼼 데 가르송은 여러 라인으로 분화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현재 꼼 데 가르송 블랙(Comme des Garçons Black)이나 꼼 데 가르송 트리콧(Comme des Garcons Tricot) 등의 라인에서 보이는 디자인의 양상이 메인 라인에 모두 반영되어 있다.


Comme des Garçons FW 1988

이 컬렉션의 테마는 "RED is BLACK"이다. 기존의 흑과 백의 변주 그리고 그 스펙트럼 위의 색들로 칠해졌던 꼼 데 가르송의 영역에 채도가 더해졌다. 기존이었다면 검정색만을 운용했을 피스들에 붉은 빛이 녹아들며 꼼 데 가르송의 옷들이 한 번 더 꼬아졌다. 슬릿과 컷아웃을 통해 레이 가와쿠보는 내의의 전면적 노출에 나섰고 흑백적 이 세 색은 서로 상호작용하며 시각적 균형을 이루기도 그것을 깨부수기도 한다.

특히 그가 보여준 기능의 해체 또한 중요한 요소이다. 위 컬렉션에서는 소매가 소매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지금에 와서야 지극히도 익숙한 문법의 옷으로 비춰질지 몰라도 이 당시에는 진보적인 시도였다. 소매가 따로 있고 암홀로 팔을 뺀 채로 캣워킹을 하는 모델을 보는 건 이 쇼의 백미이기도 하다. 또 자켓을 여미는 버튼의 위치가 싱글 자켓임에도 불구하고 한 쪽으로 치우치게 만드는 독특한 패턴을 이용하기도 한다. 현대에 넘어와서 그 유산을 찾고자 하면 국내에서 굉장히 바이럴이 많이 됐던 마틴 로즈(Martine Rose)의 자켓을 생각할 수 있다. 레이는 빨간 색 원단을 이용해 강조하고자 하는 부위를 여실히 보여줬고 그가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복식 문법의 해체에 집중했다.

소재 또한 꽤나 다양하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당시 아카이브 피스들을 보면 울과 코튼을 결합한 자켓이나 플리츠 사이에 붉은색 페이즐리가 들어간 스커트도 존재한다. 단순히 실루엣만으로 연출하는 것을 넘어 그는 소재에 관한 연구와 고심 끝에 소재감 그리고 그것이 자아내는 형태적 다양성에 까지도 손을 댔다. 꼼 데 가르송을 상징하는 스트라이프도 이 컬렉션에서 꽤나 많이 보였다.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원단을 이용해 드레이핑 기반의 의류를 만들다보니 스트라이프는 자연스럽게 뒤틀리고 꼬여 강력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이후의 꼼 데 가르송에서 조금 더 자주 보일 여러 종류의 트리밍이 사용되었다. 상기한 기하학적 모양의 원단을 더한 트리밍도 있겠지만 꽃 모양의 레이스를 패치워크의 형태로 더한 드레스도 등장한다. 해당 피스가 필자가 위 컬렉션에서 가장 사랑하는 피스이다. 영상을 기준으로 03:11 쯤에 등장한다.


Comme des Garçons SS 1989

패션에 관심이 좀 있다면 이 컬렉션을 보고 생각나는 바가 많을 것이다. 당장 지금 최고 주가를 달리는 나마체코(Namacheko), 스테판 쿡(Stefan Cooke) 등의 브랜드의 최근 컬렉션부터 헬무트 랭(Helmut Lang)의 초기 피스 등 다양한 옷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만큼 그의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것에 관한 방증이기도 하며 레이의 진보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때부터는 현재의 꼼 데 가르송이 생각나는 다양한 색상과 소재를 사용한다.

클래식 웨어에 기반한 셔츠들에 변주를 주어 가슴팍에 다양한 디테일을 사용하기도 하고 원단에 다양한 형태의 체커보드를 녹여내며 이전의 꼼 데 가르송과는 다른 느낌을 주곤 한다. 꼼 데 가르송을 상징하는 타탄 체크와는 다른 결의 체크를 사용하여 이미지의 변화를 꾀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고전적 체커보드의 사용은 현재 나오고 있는 꼼 데 가르송의 컬렉션에서도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남성복 자켓의 패턴을 이용한 피스들도 꽤나 많이 관찰된다. 위에서 말한 여성 해방이나 매 번 이루어지는 원칙의 파괴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남성적인 어깨나 허리 라인을 가진 옷을 이용하여 오간자와 같은 여성적 소재를 더해 불투명의 층위가 만들어내는 미를 연출했다. 클래식한 복식을 여러 번 꼬아서 꽤나 재밌는 연출을 하게 된 것이다. 오간자가 이 컬렉션의 주가 될 정도로 굉장히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는 오간자의 흐림을 그 자체로만 이용하지 않고 다른 옷들 그리고 다른 소재들과 합쳐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고 있었다. 비단 남성적인 느낌만을 만든 건 아니다. 벌룬 슬리브 형태의 넉넉한 드레스는 꼼 데 가르송의 극초창기 드레스의 실루엣을 연상시키기도 비교적 슬림한 다른 피스들 사이에 등장해 즐거움을 준다.

트리밍에 관해서도 괄목할만한 점이 보인다. 현재 발매되는 꼼 데 가르송 옴므 플러스(Comme des Garçons Homme Plus)와 같은 라인의 자켓을 보면 꽃이나 리본을 엄청나게 많이 이용한 디테일들을 볼 수 있다. 그런 것의 전신이 되는 디테일 또한 많이 관찰할 수 있다. 자켓의 뒤편에 꽃 모양으로 달아둔 새틴 소재의 장식이나 셔츠의 네크 라인 혹은 옆구리에 장식된 리본이 그러한 것이다. 또한 현재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인식하는 꼼 데 가르송의 가장 큰 상징 중 하나인 도트 패턴도 꽤나 많이 보인다. 흑백적청 다양한 색의 바탕 위에 앉은 도트는 그 배경이 되는 오간자와 함께 꼼 데 가르송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며 "이게 꼼 데 가르송이지."하는 인상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고 기존의 아방가르드함을 놓쳤는가 반문한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 풍성한 실루엣의 스커트와 테이핑 디테일이 들어간듯한 자켓이 보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레이와 같이 히로시마 시크를 유럽에 떨궈놓은 요지 야마모토(Yohji Yamamoto)와도 어느 정도 통하는 아방가르드한 고딕 계열의 디자인도 보인다. 울 소재의 숏 자켓에 A 라인의 롱 셔츠 그리고 미디 스커트와 로퍼의 조합은 꼼 데 가르송을 대표하는 착장이기도 하며 그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착장이다.




지금까지의 글은 레이의 커리어 초기 20년을 다룬 글이었다. 이 글을 쓰는 과정은 필자에게 현재와 근-과거의 꼼 데 가르송을 구성하는 모체의 디자인들을 확인하고 상기할 수 있던 기회였다. 이후의 커리어와 디자인의 변화에 관해 다루는 글이 언제가 될진 모르겠으나 그 때 더욱 발전한 글로 찾아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