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그니토와
스키아파렐리..


EDITOR : 김형택



이그니토(IGNITO) 정규 3집을 돌리며,
기말고사 H-10 (H stands for 'hour')


구론산(우)

학업 태만의 죗값을 치르기를 오늘로 사흘째. n 잔의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자정을 앞두고 들이킨 구론산 두 병. 나름대로 낭만이 있다. 낭만이라 쓰고 벼락치기라 읽는다. 오랜만에 돌리는 이그니토 정규 앨범. 묵직한 톤에서 튀어나오는 묵직한 단어들이 조형하는 라임과 플로우는,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가사 창을 열게 만든다. (입틀어막고 가사 읽는 중) 이야.. 죽인다. 모니터 한쪽 구석, 가사 적힌 창 뒤로는 이따 오전 10시에 치를 의류재료의이해 족보 페이지가 보이는 듯 마는 듯.



매번 이그니토의 노래를 틀면, 그의 멋드러진 단어선택에 감화되어 그런지, 도통 안 생기던 글쓰기의 욕구가 스멀 올라온다. 또 하필이면 다른 중요한 태스크를 정신없이 하고 있어야 할 이 때. 제기랄.. 모든 건 기회비용이라 생각하고 걍 쓰련다.


순서대로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폴 푸아레, 지앙 랑방, 이세이 미야키

이그니토의 노래와 내 글쓰기 욕구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음은 -실제로 지금껏 포스팅한 몇 개의 글도 이그니토 노래 들으면서 썼던 경험으로 보아- 기정 사실이다. 특히 이번에는 하나의 트리거가 더 있어 글을 안 쓸 수가 없다.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번 서양의복문화와역사 기말 준비를 하면서 특히 더 깊게 알아보고 싶은 파트들이 몇 군데 있었다. 근현대에 들어서며 줄줄이 등장한 기라성 디자이너: 교재에 실린 분들이라고 하면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나 엘사 스키아파렐리, 피에르 발맹, 장 랑방, 폴 푸아레, 이세이 미야키 .. 끝도 없다. 그 중에서도 엘사 스키아파렐리나 이세이 미야키 선생님의 경우 이번 강좌를 기점으로 팬이 되었다. 이세이 미야키 선생님은 이번 너드 대주제였던 '첨단' 에 가장 가까이 있는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분인데(미야키 선생님의 컬렉션들을 죽 보면 당대 첨단 과학 기술을 제깍제깍 패션 세계에 반영하려는 시도들이 확연히 보인다), 개인 기사로 짧게나마 다뤄볼걸. 무지다. 알고 났을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요즘 더욱 잦다. 편협하고 수상쩍은 지식"보다" 폭넓고 솔직한 무지가 "나을" 뿐 이지, 그것이 최선인 건 절대 아니다. 편협하지 않고 명료한 앎에 다가가려고 해야지. 역시 이번 여름방학도 어김없이 폐관수련이 절실하다. 에휴 즐겁다. 아무튼 오늘 라이트하게 써볼 내용은 엘사 스키아파렐리 선생님이 생전 내딛으신 발걸음들에 관해서다.



Elsa Schiaparelli(1890-1973)

스키아파렐리 선생님, 아니 정확히는 브랜드 스키아파렐리(Schiaparelli) 의 꾸뛰르 정신과 결과물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궤를 달리하는 실루엣과, "금속 활용이란 이런 것이다" 를 온몸으로 나타내는 전설적인 피스들. 개인적으로 22년 봄 컬렉션 피스 일부는 브랜드 역사 전체를 놓고 봐도 손에 꼽을 정도로 아름답다. 이렇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품들이 지금까지 등장할 수 있는 것은,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초현실주의 디자인관이 브랜드의 뿌리에 자리잡고 있어서다.



선생님의 호기심이 부럽다. 주변의 모든 사물에서 아이디어를 뽑아내기가 도대체 쉬운 일인가? 아, 그 태도의 '난이도'를 헤아리려는 마인드부터 난 글렀다. 아무튼. 20세기 극초반, 유년기 때부터 종잡을 수 없던 그녀의 호기심과 당대 유행하던 초현실주의 예술이 기가 맥히게 어우러져서 등장한 것이, 그녀가 처음 선보인 패션에서의 트롱프뢰유 기법 활용이다. 트롱프뢰유는 착시현상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애초에 트롱프뢰유가 불어로 착시다. 살바도르 달리나 장 콕토를 비롯한, 초현실주의 사조와 맞닿아있는 여러 예술가들과 사적 친분이 있던 스키아파렐리 선생님의 작품들을 보면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주변의 영향을 받아 예술적 걸작을 선보인 그녀는 후대에 등장하는 모든 초현실주의 패션에 강한 영향을 주는 포지션이 되었고, 마리 카트란주(Mary Katrantzou) 같은 트롱프뢰유 원툴 디자이너에게는 뭐.. 전설적인 스승님이었을 테다.




스키아파렐리의 트롱프뢰유

선생님의 디자인 스타일과 활동 시기를 보면, 선생님의 침강기를 미루어 알 수 있다. 역시 세계 2차대전 시기다. 서복사 수강한 친구들은 익숙해할, 물자 제한에 기인한 '실용의복' 착용의 확대로 인해 의복 형태가 획일화되었고, 그 틈을 타 등장한 크리스챤 디올의 '뉴룩' 붐에 스키아파렐리 선생님은 조금도 적응하지 못했다. 그렇게 선생님은 당신의 레전더리 아카이브를 유산으로 남기고, 자서전을 집필하면서 여생을 보내셨다고 한다.



디자이너로서 선생님의 마지막이 아쉽긴 했지만, 또 전성기를 생각하면 장난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장난아닌 전성기는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일궈주었고, 그 아이디어는 호기심과 그를 해소하고자 하는 열정에서 출발했다.

그러니까 나도 호기심과 열정이 싹텄으면 좋겠다. 싹트고 무럭무럭 자라서 전성기의 꽃이 만개하여라! 낙화까지 아름다울 정도로 흐드러지게 피어라 나의 열정과 호기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