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 김형택



우선 슬릭 릭을 알게 된 첫 트랙과 함께 글을 시작하겠다.

Mos def - Auditorium (feat. Slick Rick)


Album : The Ecstatic, 2009

근래 이윤근 에디터를 통해 알게 되어 덕질 중인 또다른 래퍼, 마스 데프(Mos def) 의 앨범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트랙에서 슬릭 릭과 처음 만났다. 심취해서 한껏 찡그리게 만드는 전주, 비집고 들어오는 마스 데프의 "The way I feel -" 에서 또 한 번 감탄하면서 슬릭 릭 얘기를 시작하는 게 맞나 싶긴 한데.

마스 데프의 무덤덤하면서도 힘있는 래핑과 너무 다른 색깔의 래퍼가 두 번째 벌스에 나와서 놀랐고 그게 슬릭 릭이었다. 스토리텔링 랩 - 최근에는 장기하 선생님이 다시 대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 의 선구자격인 분이다. 여성적인 목소리로 물 흐르듯 가사를 뱉어내는데, 여타 래퍼들이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라임과 딕션으로 끝장을 본다. 지금까지 내가 알던 "딕션이 좋다" 라 함은 빡- 빡- 뱉는 가사가 귀에 제대로 꽂히는 거였는데. 슬릭 릭의 딕션은 궤가 다르다. 그냥 이 사람은 발음이 개 좋다. 그.. 유치원 다닐 적에. 동네 문화센터에서 구연동화 해주시던 선생님이 계셨다(외모도 기억난다: 아프로펌에 준하는 아주머니펌에 보라색 틴트가 들어간 금테 선글라스.) 살면서 그 선생님만큼 딕션이 좋은 사람을 못 봤었다. 슬릭 릭의 딕션이 정확히 구연동화 선생님의 그것과 비슷하다. 잔잔하고 매끄러운 딜리버리에 라임까지 충만해서 그런지 중추적 자극이 스멀스멀 그냥 맛있게 들어온다.


Slick Rick - Behind Bars


Album : Behind Bars, 1994

앨범 통째로 좋다.

다만 들으면 들을수록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랩스타일이라는 게 와닿는다. 확실한 거 하나는 클럽에서 이 사람 노래 틀면 코로나 잠잠해진 지 얼마 됐다고 도로 샤따 내려야 한다. 워낙 기교가 적고 "fire-spitting" 한다는 느낌보다는 훨씬 은은해서. 평냉 vs 함냉에서 함냉을 택하는 작자들은 슬릭 릭 노래 듣지 마라! 백석 선생님보다 김수영 선생님의 시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앨범명과 동일한 트랙이(고 아마 그게 타이틀곡)다. 처음으로 들어본 슬릭 릭 개인 앨범. Behind Bars 는 유튜브 비디오로 처음 봤는데 애니메이션과 곡의 합이 좋다. 스토리텔링 랩이라 그런지 함께 들으면 애니메이션에 부여된 서사가 술술 읽힌다. 후드(Hood)식 구연동화 뭐 그런 건가 진짜. 출신 지역이 브롱스라 진짜 후드 축에 속하긴 한다. 근데 또 눈 다친 건 애기 때 유리 파편에 찔려서다 애니메이션도 먼 옛날 쓰던 셀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이라 더 구수하다. 불과 1-2년 전까지 각지 Lo-fi 재즈플리에서 가져가 쓸 법한 사운드에 그보다 살짝 더 높은 텐션으로 뱉지만 여전히 잔잔하다.


Slick Rick - Children's Story


Album : The Great Adventures of Slick Rick, 1988

슬릭 릭의 "스토리 텔링" 랩 아이덴티티가 가장 많이 녹아 있는 앨범(데뷔 앨범이니까?),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소개되는 곡을 가져왔다. 당장 1번 벌스가 "Once upon a time, not a long ago- " 로 시작한다. 3분대에서 곡 끝까지 이어지는 "Knock him out, Rick, Knock Knock Knock" 무한 반복만 어떻게 참을 수 있으면 꼭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정 내키지 않으면 3분 03초에서 깔끔하게 스탑해도 된다.

"러브젤을 발라주는 연인의 손길"이라는 프레이즈를 썼는데.  슬릭 릭 아저씨의 랩이 마 악 에로틱하다기보다는 심히 매끄럽게 들리는 그 기분이 어딘가 닮았을 것 같았다. 힙합 자장가로는 최고다.

Auditorium 곡 얘기할 때 잠깐 장기하 선생님을 언급해서 생각난 건데, 장기하 선생님 랩의 강력한 소구점이 가사와 보이스의 해학성인 것관 달리 슬릭 릭의 랩에는 그런 거 없다. 외려 되게 보컬한(사회 문제에 강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라 몇몇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회비판적인 가사를 담고 있기도 하다(장기하 선생님이 보컬하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 잔잔하지만 진지하다. 엄근잔잔 슬릭릭.

다음 음악 포스팅은 마스 데프 얘기 주저리주저리 해보려고 한다.